소설 ‘걸리버의 여행기’에서는 표류하다가 거인국 혹은 소인국에 도착해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익숙한 세계에 살아가다가 눈높이가 전혀 다른 세계에 도착하여 그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신선하고 독특하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갑자기 고양이가 되어 살아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무릎 높이도 되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르며 어색할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마치 그가 고양이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실감나고 독특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테러와 전쟁, 종의 탄생과 멸망,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이런 3가지의 큰 주제들을 한 권의 책에 엮어낼 수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동떨어져보이는 내용들을 이질감 없이 적절하게 인용하면서도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게 이끌어내는데, 이래서 베르나르의 책은 믿고 읽게 된다. (그에 비해서 내 필력은 아직 부족해서 머릿속에는 책에 대한 생각이 많은데 막상 글로 적으려니까 막막하다ㅜㅜ 이야기를 소개하자니 너무 스포일러같고…)

소설이 끝난 뒤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다음과 같은 추신을 남겼다.

만약 여러분보다 덩치가 다섯 배는 크고 소통도 불가능한 존재가 여러분을 마음대로 다룬다면, 문손잡이가 닿지 않는 방에 여러분을 가두고 재료를 알 수도 없는 음식을 기분 내키는 대로 준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이들 처지도 이와 비슷한데, 기간이 짧아요, 그렇죠?)

let’s say… I’m 애견샵에서 살아가는 말티즈!

저 너머의 세상은 언제나 신비롭다. 더 이상 다가가려 하면 투명한 무언가에 막혀 더 나아가진 못하지만, 매일 아침마다 세상 구경하길 즐겨하는 편이다. 커다란 덩치들은 아침부터 왜 저리도 바쁘게 움직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먹을게 주어지는데 말이지. 오늘따라 밥이 늦게 나오는거 같긴 하지만. 나에게 먹이를 주던 거대한 덩치는 오늘 조금 늦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자느라 정신 없는 모양이지. 이럴줄 알고 어제 밥을 더 줬을 때 숨겨놨지! 맨날 똑같아서 다른걸 먹고 싶지만 배를 채웠으니 됐어. 저번주에 씹는 맛이 좋은게 나와서 맛있었는데 말이지.

지루함에 못이겨 한숨 자다가 쿵쿵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깜짝이야. 조금 작은 덩치가 나를 바라보면서 두드리고 있네. 사실 나같은 강아지랑 놀고 싶지만 저 녀석이랑 놀면서 지루함을 달래봐야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다가가는데, 그만 큰 덩치가 그 녀석을 끌고 가버렸다. 심심해서 옆에 있는 강아지한테 ‘왈왈’ 소리를 냈지만 반응이 없다. ‘왈!왈!’ ‘왈!왈!왈!’ 역시 반응이 없다. 눈에 초점이 풀린 채 가만히 엎드려있는데 쟤는 심심하지도 않나? ‘왈!왈!’ 다시 짖는 순간 거대한 덩치는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나랑 놀아주려는건가? ‘왈!왈!왈!’ 다시 짖었는데 그 덩치는 손가락이 달린 손으로 쾅쾅 두들긴다. ‘왈!왈!’ 왜 놀아주지 않고 갑자기 나가는거지? 그는 주머니에서 길다란 먹이를 꺼내더니 입에 물고 있는다. 구름 만드는 놀이하고 있는거 같은데 나랑 같이 하지… 시무룩해진 나는 다시 누워 잠에 든다.

→ 강아지의 시점에 살짝쿵 써봤는데 생각보다 어렵다..(ㅋㅋ) 완전히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은듯… 심심할 때마다 내가 특정 동물이라 생각하고 상상해봐야지!


(23.04.10 추가)

소설 속에서는 피타고라스가 고양이 바스테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피타고라스: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동물로 태어나고 싶어?’

피타고라스는 세심하게 움직일 수 있는 다섯 손가락을 가진 인간을 동경하고, 자존감이 높은 고양이 바스테트는 다시 태어나더라도 ‘고귀한 고양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 하나의 애완동물로 얽매이는 것도 싫고, 매일매일 생존을 걱정하며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야생동물도 싫다. 전자는 편해보이지만 너무 무료하고 지루하고, 후자는 생존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원대한 꿈이나 목표가 있더라도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책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은 먹이 대신 비행에 집착하다가 무리와 멀어지게 되었고, 외톨이가 되었다.) 인간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활자를 가지고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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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8 문학 23.04.08-23.04.09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