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은 독자를 빠져들게 만들고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들지만, 독자는 그 생각을 구체화하기가 (개인적으론) 어렵다. 마치 카메라 렌즈를 통과한 빛 광자가 필름에 (혹은 이미지 센서에) 닿기 직전에 홀연히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내 표현력이 부족한건지, 하루키 소설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점이 묘하게 매력있다. 한마디로 소설이 내게 밀당하는 기분이다. 또한 하루키의 작품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따끔한 충고를 날리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에 꼭 주제와 교훈이 중요해? 소설은 있는 그대로 즐기고 느끼는거야” 1Q84에서도 느꼈지만 여러 에피소드들이 담긴 ‘일인칭 단수’는 더욱 그러했다.
1)
일인칭 단수는 마치 하루키의 ‘블랙박스’처럼 겪은 (혹은 그렇게 기억하는) 몇 가지의 에피소드들을 제시한다. 그러한 사건들은 일어났으나 마나 별반 다를게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런 작고 사소한 사건들에 불과한 기억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쳐왔고 우리의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How tiny the memory is, it greatly affects our life.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고 싶다.
2)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십배 분량의 촬영본이 필요하다. 중요하지 않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을 날리고 지워내는 작업 후에 남는 알맹기를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대한 기억 또한 연속채보다는 부분부분 잘라낸 끊긴 조각과도 같다. 그런 조각들은 ‘기억’이나 ‘추억’으로 불리고 직간접적으로 인격을 형성하는데 기여해왔다.
3)
하루키의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문장은 담백하고 간단한 문장인데 내 마음을 간파당했다.
(p.97) 나는 활자를 읽지 않고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란 불가능하다. (중략) 책이 없으면 손에 잡히는 인쇄물을 뭐든 읽는다.
CCTV로 내가 누군가에게 감시당한, 혹은 누군가 몰래 나의 일기를 읽게 된 기분이랄까? 활자가 없는 세상에 살아간다면 매우 무료하고 심심했을 것이다. 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별짓는건 감히 ‘문자’라고 말할 수 있다. (암 그렇고 말고!)
4)
‘기억’은 내가 ‘나’임을 증명해주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래서 기억을 잃는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고통받고 슬퍼하는게 아닐까. 나쁜 기억과 함께 좋은 기억까지 모두 사라진다면 ‘나’라는 정체성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인 일인칭 단수 ‘I’가 누구인가는 내가 가진 ‘기억’이 결정한다.
제목 | 분야 | 읽은기간 | 작가 | 추천강도 |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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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 8 문학 | 23.04.10-23.04.10 | 무라카미 하루키 | ★★★★☆ | 문학동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