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가, 시험을 준비하다가, 취업이나 입시에 매달리다 보면, 다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걱정들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자유를 즐기고 싶다는 소원을 빌기도 한다. 사실 입대해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지금 나도 그런 생각을 매일 한다. 그러보면 나는 여행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환상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여행도 그런 법! 여행은 숨돌리기가 되어줄 수는 있지만 완전한 도피처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결국에 우리가 떠나는 곳들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것이기에 때로는 계획이 많이 틀어지기도 하고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책은 유럽과 미국 등지를 다니며 때로는 공부하는 학생으로, 때로는 여행객의 시선으로 각 나라들에 대한 솔직한 느낌들에 대한 에세이다.

(p.355) 완전한 천국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다. (중략) 어차피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낸 세상이었고 웬만한 사람들은 보통 완벽하지 못했다.

시장에서 10%의 가격으로 흥정해야하는데 30%에 물건을 샀던 경험, 1인실이 없어 이틀치 숙박비를 내고 2인실에 머물렀던 이야기, 선박에 자리가 없어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갑판에서 덜덜 떨며 하룻밤을 보냈던 경험 등 우여곡절을 솔직하게 담아내었다. 그런 담백한 저자의 글이 매력있게 느껴졌다. 브이로그나 인스타 피드에는 항상 행복하고 화려한 순간들만 담아내지만, 사실 여행을 떠올렸을 때 기억에 남는 건 그곳에 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독특하고 새로운 경험들이다. 그런 경험들이 반드시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이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하고 틀에 박힌 여행 코스는 조금 벗어나보는게 어떨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역시 나는 행운아야. 아무나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한거지!’하며 슬기롭게 넘기는게 어떨까.

(p.349) 사람은 좋은 것만 기억해내는 꽤 매력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내가 상처를 줬던 많은 사람들도 그랬다면 좋겠다.

케이블카 위에서 바라본 아름답던 여수 밤바다, 조개구이를 먹으며 노을을 구경했던 인천 월미도, 택시를 타고 한참을 해안도로를 달렸던 강릉, 여러 유적지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치 않게 불꽃놀이를 구경했던 경주까지. 여행을 돌아보면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추억으로 기억에 남는다. 물론 기억하지 못하는 우여곡절들과 사건사고들이 있었겠지만 이럴 땐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반팔을 입게 되는 날씨가 되면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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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6 예술 23.04.29-23.04.29 오영욱 ★★★★☆ (주)위즈덤